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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빙 마인드] 주관적 생각(시물레이션)의 저주

boram2150 2024. 6. 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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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자아관

경계성 성격장애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안정적인 자아관을 형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의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뇌는 항시적으로 과도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면서 항상 사랑받는다는, 혹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애쓴다. 페이스북에 뭔가를 올리는 사람들처럼,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도파민을 한 번 더 분비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상담 시간을 연장해 주면 그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행동, 보상, 그들이 "정말로 필요하다"라고 주장해서 내가 상담을 한 번 더 잡아줄 때도 그들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낀다. 행동, 보상. 나는 순진했다. 나는 그들에게 언제 '위기'가 찾아올지 몰랐으므로 그때그때 상황을 보면서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대로 반응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환자들은 물론 나 자신조차 나의 반응을 예측할 수가 없을 수밖에. 그들은 매우 원초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안정적 애착을 제공하고, 자신의 세계에 예측 가능한 이정표를 만들어줄 누군가를 원했다. 그들의 잠재의식은 나에게서 그런 단서를 주는 행동을 이끌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행동들 중 어떤 것이라도 일관성을 보이지 않는 경우, 그들은 가장 끈질긴 유형의 강화를 얻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접착제를 제공하고 있었던 셈이다.

'보상에 의한 학습'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서 경계성 성격장애를 바라보자 환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쉬워졌다. 예컨대 경계성 성격장애의 대표적인 특징들 중에는 인관관계에 대한 극단적 이상화와 극단적 평가절하가 있다. 어느 날 그들은 새로 사귄 친구 또는 애인과 사이가 얼마나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면 바로 그 친구 또는 애인이 '내가 만난 최악의 인간들'목록에 올라 있다. 그들은 삶의 안정성을 갈구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 관계에 쏟는다.

보통 이 긍정적 감정은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 감정에 습관이 들기 때문이다.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인 애인으로부터 지나친 관심을 받는 사람은 어느 시점이 되면 상황을 파악한다. 그 혹은 그녀는 숨이 막힌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집착이 건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약간 거리를 둔다. 나의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는 불안정을 감지하고 과도한 열성을 발휘한다. '안돼, 소중한 사람을 또 잃게 생겼잖아. 내가 가진 걸 다 내줘야 해!' 그러면 역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관계는 끝이 나고, 환자는 또 한 번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특별 상담을 요구한다.

위험한 주관적 생각

주관적 편견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있으면 시물레이션이 경로를 벗어났을 때 바른길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관적 편견이 어디서 생겨나는지를 명료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스펙트럼 위에서 "내가 얼마나 훌륭한지 다들 봐요"라고 외치는 영화배우의 상태와 무대 뒤편에 앉아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설지 고민하는 '왕따' 연기자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가? 관심, 강화, 혹은 다른 형태의 동경을 갈망하다 보면 이 중독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관적 편견이 스펙트럼을 강화하고, 스펙트럼은 다시 주관적 편견에 피드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관적 편견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한번 생각해보기만 해도 우리의 세계관을 왜곡하는 안경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주관적 편견이 언제, 어떻게 말썽을 일으키는가를 파악하는 행위야말로 주관적 편견을 업데이트하는 첫걸음이다.

예컨대 누군가 우리를 칭찬하는 순간 우리의 기분은 어떤가? 그 따뜻한 빛 속에 흥분의 요소가 있는가? 더 많은 흥분을 얻으려고 거기에 달려드는가? 그리고 우리가 다른 누군가의 자존심을 계속해서 건드릴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나 역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동료들을 퉁명스럽게 대한 적이 있다. 그 또는 그녀는 어떻게 반응하며,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서 빠져나오는가?

이런 상황들을 더 명료하게 마주하면, 잠시 숨을 돌리면서 우리의 나침반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편안하지 않음'을 연장하고 있는가? 그것은 습관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당면한 순간 그렇게 하는 것이 쉬워서인가? 만약 한 걸음 물러나 우리의 가정과 편견들 때문에 나침반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주의 깊게 살핀다면, 그것은 더 나은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 대단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관찰하고, 알아차리고, 그 관념에 도전해 보자. 때로는 누군가가 우리의 단점 또는 장점을 지적해줘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그것을 지적해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 내용을 우아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설적인 비판을 피해 움츠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거니와,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으로 가서 진실한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해서도 안 된다.

시물레이션(몽상)의 저주

시물레이션은 우리를 '편안하지 않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행동인가? 대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2010년 맷 킬링스워스와 댄 길버트는 우리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거나 몽상(전문용어로는 SIT라고 하는데, 외부 정보와 무관하게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라는 뜻이다.)에 잠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사했다.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몽상에 잠겨 있을까? 그들은 일과의 50퍼센트 가까운 시간 동안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이 아닌가! 연구자들이 일에 대한 집중 여부와 행복의 관계를 조사했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몽상에 잠기는 순간에 덜 행복하다고 답했다.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방황한다. 그리고 방황하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와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말이다. 앞날의 행동을 미리 예측할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앞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대체로, 유쾌한 사건에 대한 몽상에 잠길 때는 눈앞의 일에 집중할 때와 동일한 수준의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앞의 일이 무엇인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중립적인 몽상과 불쾌한 몽상까지 다 합쳐서 분석하면 몽상에 잠기는 행위와 낮은 행복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었다. 말하자면 방황하는 마음은 "불쾌한 마음"이다.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사이에 우리의 진짜 삶이 흘러가버린다는 내 요의 시와 격언이 얼마나 많은가? 몽상에 잠길 때 우리는 불필요한 걱정 또는 흥분에 사로잡혀 자신을 소진할 뿐 아니라 축구 경기까지 놓친다는 이야기다.

생각의 내용(유쾌하든 불쾌하든)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쁜 몽상 또는 끔찍한 몽상에 휩쓸려 당명한 일에 정신을 쏟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당면한 일이란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자동차일 수도 있고 우리 아이의 생애 첫 골일 수도 있다.

나는 살면서 상상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상상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행복한 생각에 빠지면 계속해서 생각하느라 내가 하는 일에 집중을 못했다. 반대로 꾸지람을 받거나 직장상사에게 한 소리를 들으면 짜증 나고 분해서 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생각 병에 사로 잡힌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궁금해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토록 마음의 화가 나있었으며, 걱정은 왜 이렇게 많았으며, 상대방이 거절하지 않을까 늘 초조해했는지 의문이 풀리는 대목이었다. 내가 스스로 너무 머릿속에서 시물레이션을 그려서 그런 거였구나, 과거에는 시나리오를 짜서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면 이런 말을 하고 저렇게 나오면 저런 말을 해야지. 혼자 너무 생각을 많이 했구나. 를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책을 통해서 왜 이런 병적인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어서 너무 속 시원했다. 한편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무지하고 불안해하면서 살아갔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요즘 들어서는 독서는 정말 현대사회의 필수요소인 것 같다.